여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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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는 저자 서문에서 문학이 몹시도 인공적 기교와 따분한 냄새를 풍기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라난 지드의 반발이 청년 시절 아프리카 여행을 계기로 폭발한 책이 이 아닐까 한다. 가상의 제자 '나타니엘'과 가상의 스승 '메날크'에게 아프리카, 유럽 곳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기록한 메모들을 토대로 일기, 에세이, 시, 연설문까지, 그냥 막 나오는 대로 쓴 자유로운 편지 형식을 띠고 있으며 아름답고 과격하다. 아프리카 대지에서 밟는 흙냄새처럼 종교 윤리에서 벗어난 강렬한 생명력을 추구하는 삶, 살아있는 순간과 욕망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화염처럼 토하는 이 책은 그 당시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10년 동안 500부 밖에 팔리지 못한 전적(?)을 가지고..
2025.04.10 -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학교와 직장의 선후배 사이로 얽혀진 네 명의 남자가, 즉흥적인 동기로 얼떨결에 여행을 떠났다가 각자 숨겨두었던 상처와 고민을 하나씩 드러내며, 서로에게 위로도 되었다가 오해도 되었다가 좌충우돌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하는 잔잔한 여행기. 주제가 묵직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그리운 까닭은 팬데믹 시대의 피로감과 갈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네 사람의 사연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그냥 여행을 다녀와 머리를 식히고 온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등장인물 (괴짜 청년 사이키, 이혼 가정에서 자라 미술대학 나온 마시마, 이혼남 시게타, 죽은 첫사랑의 추억을 가진 나카스기)과 독자의 첫 만남은 좀 뻘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는 외면한 채 우린 우리 이야기를 한다는 식으로 출발..
2025.04.09 -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한 부부, 혹은 싱글들의 이야기로, 행복을 찾아 낯선 세계로의 도전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인터뷰한 내용들을 읽으며, 한국이란 나라는 어떠한 곳인가를 자꾸 되묻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 공통점이 있다. 대학시절 해외연수나 배낭여행이 가능했고, 외국에 친척들이 거주해서 외국생활이 낯설지 않다는 점,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능력자들이었다는 것, 이 모두 경제적 환경과 노력이 뒷받침 해준, 비교적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말의 경제적 여건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떤 희망을 줄까?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공평과 희망이 없는 미래에 대해 극도의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한국은 결..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