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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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책 제목, 낯설지만 왠지 끌리는 작가의 이름... 여러모로 흥미진진했고 눈에서 떼기 힘든 책이었다. 크누트 함순은 100년 전 노르웨이 작가로 아직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진 듯하고,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가난과 육체노동과 학대에 시달리며 성장한 작가였다. 은 노르웨이가 석유 개발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기 이전, 험한 자연환경에 가난한 어업국가였을 시기가 배경이며, 함순을 노르웨이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책이다. 앙드레 지드의 극찬으로 포문을 여는 이 책은 그가 글을 쓰면서 겪었던 가난과 뼈저리게 배고팠던 경험이 녹아있는 자전적인 성격의 소설이다. 줄거리는 별로 없다. 연필 한 자루밖에 가진 것이 없고 영양실조인 작가(신문사에 투고하여 원고료를 간간히 버는 정도)는 원고료..
2025.04.14 -
여자의 일생
모파상의 글은 끈질긴 사실의 나열이다. 그다지 감상적이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고 결말에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해피 엔딩도 새드 엔딩도 아닌 처연한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은 소설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지만, 모파상이 활동했던 1800년대에는 낭만주의가 휩쓸던 시기라 그의 작품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어마어마했던 모양이다. 니체나 톨스토이도 모파상의 작품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을 극찬했던 걸 보면 말이다. 이라는 극히 신파적이고 따분해 보이는 제목의 내용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현모양처를 강요받고 살아온 양반 가문의 여자들의 수동적인 삶, 또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그늘 밑에 평생 고생바가지를 뒤집어쓴 채, 자식만을 보고 살아왔던..
2025.04.11 -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는 저자 서문에서 문학이 몹시도 인공적 기교와 따분한 냄새를 풍기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라난 지드의 반발이 청년 시절 아프리카 여행을 계기로 폭발한 책이 이 아닐까 한다. 가상의 제자 '나타니엘'과 가상의 스승 '메날크'에게 아프리카, 유럽 곳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기록한 메모들을 토대로 일기, 에세이, 시, 연설문까지, 그냥 막 나오는 대로 쓴 자유로운 편지 형식을 띠고 있으며 아름답고 과격하다. 아프리카 대지에서 밟는 흙냄새처럼 종교 윤리에서 벗어난 강렬한 생명력을 추구하는 삶, 살아있는 순간과 욕망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화염처럼 토하는 이 책은 그 당시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10년 동안 500부 밖에 팔리지 못한 전적(?)을 가지고..
2025.04.10 -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학교와 직장의 선후배 사이로 얽혀진 네 명의 남자가, 즉흥적인 동기로 얼떨결에 여행을 떠났다가 각자 숨겨두었던 상처와 고민을 하나씩 드러내며, 서로에게 위로도 되었다가 오해도 되었다가 좌충우돌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하는 잔잔한 여행기. 주제가 묵직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그리운 까닭은 팬데믹 시대의 피로감과 갈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네 사람의 사연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그냥 여행을 다녀와 머리를 식히고 온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등장인물 (괴짜 청년 사이키, 이혼 가정에서 자라 미술대학 나온 마시마, 이혼남 시게타, 죽은 첫사랑의 추억을 가진 나카스기)과 독자의 첫 만남은 좀 뻘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는 외면한 채 우린 우리 이야기를 한다는 식으로 출발..
2025.04.09 -
달밤
은 이태준이 등단한 1925년 부터 1935년에 발표한 까지 모두 36편을 수록한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한국 문단이 이태준을 언어의 미학자, 한국의 모파상, 이런 수식어를 붙이며 높이 평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 한국문학사에서 근대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1930년대 한국 근대문학이 활짝 꽃을 피운 절정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며 당대 최고의 작가로 군림했었고, 해방 후 월북을 선택했기에 그의 나머지 삶의 궤적을 알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그를 더 소환케 만들지 않았나 하며, 친일계몽주의나 민족주의가 양분되는 시점에서 그의 작품의 서정성이 남달랐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그가 한창 줏가를 올리던 시기에 저널리즘과 타협하지 않은 순수한, 그냥 쓰고 싶어서 쓴 작품들의..
2025.04.08 -
인간실격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어두운 소설. 부잣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사람을 두려워하여, 연기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고 한시도 행복해본 적이 없었던 주인공 요조가 술과 자살 시도와 여자와 약물에 빠져 정신병동에 수감되기까지의 과정을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인간 내면의 추락과 피폐해짐의 끝판왕을 보는 느낌으로 허탈하게 읽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 더 안타까왔다. 다자이 오사무는 11명의 자녀 중 6번째 자식으로 부모님의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가문이 가난한 농민들을 약탈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일어난 부잣집이라,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살며 좌익 운동에 가담하였고,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
202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