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2025. 3. 21. 18:28서평

개인적인 체험

 

주인공 버드는 27세 학원 강사로 아프리카 탐험을 꿈꾸는 열정과 야망을 가졌으면서도 삶의 괴로움을 술에만 의지해 버틸 정도로 현실을 도피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어찌어찌 결혼해 가장이 되었는데, 장인은 대학원 교수고 부인과의 사이는 그저 그런 듯, 애틋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장인이 버드가 대학원 시절 때 술에 절어 방황하던 것을 구제하듯이 학원 강사 자리를 알아봐 주고 딸과 결혼을 시킨 것 같다. 이쯤이면 장인이 성인군자인지, 가난한 환경에서 험하게 자라나 천신만고 끝에 동경대에 합격한 버드의 잠재력을 높이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버드에게 아이가 태어난다. ‘뇌 헤르니아’라는 병명을 갖고, 두개골 결손으로 뇌의 내용물이 빠져나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듯한 흉측한 몰골의 아이가 병원 신생아실에서 식물인간으로 살 것이냐? 확답 없는 대수술을 할 것이냐? 기로에 서서 버드를 기다린다. 아직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버드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의 탄생은 나약한 버드를 여지없이 무너지게 만든다. 괴물 아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버드는 필사(?)의 노력을 다 하는데...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이며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1994년 두 번째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특히 원폭과 원전 전반에 비판을 남겼고, 반전 운동에 앞장선 대표적 친한파 소설가다. 제목처럼 오에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이라 크게 알려졌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젊었을 땐 일본의 국수주의를 비판하고 천황제 폐지를 주장할 만큼 군주제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던 오에는 뇌 장애를 가진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그의 문학 시각이 장애인을 시작해 원폭 피해자로 확대되어 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재능이 있지만, 전쟁의 상흔으로 영혼이 고립되고 막막한 젊은 아버지가 사랑도 없는 결혼을 통해 우연히 낳은 장애아로 인해, 자기 인생에 발목이 묶일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압박감을 해소하려 옛 애인을 찾아가 독한 위스키와 정사에 매달려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토하고 별 지랄을 다하지만 아이는 쉽게 죽지 않는다. 수술을 거부하고 아기를 납치하다시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옛 애인과 불법 낙태 수술하는 곳에 아기를 맡기며 죽음을 꾀하고 아프리카로 떠나서 새 삶을 살자고 약속할 때부터 버드의 죄책감은 시한폭탄이 되어있었다. 결국 뒤늦게 정신을 차린 버드가 막다른 골목에서 더 스스로에게 도망치지 않으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해피 엔딩의 결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시종일관 버드의 부인은 큰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1950년대 가부장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가 낳은 애가 장애인인 것도 모르고 병실에 누워 쉬쉬하는 속에 장모랑만 은밀히 통화하는 버드만이 그 책임을 오롯이 지고 있다는 점, 이 모든 괴로움을 남편과 사별하여 독신으로 살고 있는 옛 애인을 의지하며 무모하게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 딱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오에가 자기 아이가 장애로 태어났을 때, 버드처럼 이런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에는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워 현재 장애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오에는 장애아를 소재로 한 명작을,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꽤 많이 출판하였다. 자신의 쓰디쓴 경험에서 우러난 창작은 아무리 울궈먹어도 진국이 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개인적인 체험’을 읽으면서 일본 문학에서 공통으로 느꼈었던 현실 도피적, 가학적, 파괴적인 성향이 느껴져 거북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오에의 세심한 표현력이 너무 정밀하고 진심 어려서 한 문장, 한 문장 몰입이 잘 되고 피곤함이 엄습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도 처음으로 문학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사회문화적 이슈가 되고 있는 마당에, 노벨 문학상이 그렇게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을 통해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서방 세계의 기준이 아닌가 말이다. 후보자를 지릴 정도로 빵빵한 상금을 통해 물리학상, 화학상, 평화상, 경제학상까지는 인류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 (실제로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사람들은 많은 것 같다. 비상 환자 수혈을 대비해 평소에 자발적으로 헌혈을 많이 한 사람들, 눈 올 때 삽 들고 펀펀하게 길을 내놓아 힘없는 사람들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배려하는 사람들 등...)을 소집해 치하한다는 명분이 먹혀들었다고 치자, 문학은 어떤 기준으로 인류 헌신의 잣대를 세울 것인가?

 

특히 언어의 문제는 더 까다로울 텐데... 그리고 심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방 사람들일 것이고 아시아 문학을 심사하는 데는 더 애로점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문장을 서양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건 번역의 영역이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노벨 재단에서는 이미지가 있으니 나라마다 골고루 상을 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전후 선진국으로 도입한 첫 나라이니 국제 정세에 발맞춰 시기 적절한 시기에 자료를 모아 수상자를 정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말이다.

 

오에의 근황이 궁금해 찾아보니 2023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 때도 스웨덴 국왕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표했다고 한다. 스웨덴 국민이 주는 상이라 생각하겠다며 결국 받았지만 (상금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자위대의 파병을 반대하고, 중국의 난징 대학살과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의 잘못을 인정해 일본의 우익 세력이 이를 가는 소설가로도 유명한 오에 겐자부로... 한국에 자주 방문하였고, 김지하와 황석영을 좋아했던 오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난 후, 평생 반전 운동에 앞장서고, 장애아의 아버지로서, 폭력에 저항했던 작가로서 기억되는 것이 그의 개인적인 일생에는 영광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체험

저자 오에 겐자부로

출판사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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